“사회적 냉대와 차별, 편견 속에서 말할 수 없는 교통을 겪어온 한센인과 가족에게 정부를 대표해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한승수 국무총리가 지난 16일 전남 고흥군 국립 소록도병원에서 열린 ‘제6회 전국 한센가족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한센병 환자와 가족에게 사과의 뜻을 전했다. 현직 총리가 소록도를 공식 방문한 것도, 한센인 고통을 위로한 것도 처음있는 일이다.
소록도가 문둔병·나병이라 불리는 한센병 환자의 격리지역이 된 것은 1916년 5월, 일제가 이 섬에 한센병을 치료할 자혜의원을 세우면서부터다. 1963년 한센병 환자 격리·수용 정책이 폐지될 때까지 2만여명이 소록도와 집단촌(현재 89곳)에 갇혀 감금·폭행·낙태 당했다. 유전되지 않고 치료약만 먹으면 전염력도 없고, 1~2년내 완치되는데도 한센병을 한때 앓았다는 이유로, 냉대과 편견을 견뎌야 했다.
차별과의 첫 싸움은 2003년에 시작했다. 일본의 한센인 격리정책이 인권 침해라며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승소한 일본 한센 인권변호인단이, 그해 소록도를 찾아온 것이다. 박영립 변호사 등 한국한센인권변호인단까지 합류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지만, 2005년 10월 일본 법원은 ‘패소’의 아픔을 안겨줬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분노한 한센인 1000명이 서울 종묘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였고, 일본은 관련 법을 개정해 한국과 타이완 한센인에게도 1인당 800만엔(환율에 따라 8000만~1억2000만원)의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한센인이 난생 처음으로 세상의 차별과 맞서 승리한 것이다.
17일 현재 소록도 거주자 124명 전원을 포함해 426명(청구인 453명)이 보상금을 지급받았다. 승리의 열매는 달콤했다. 11살 때부터 소록도에 살아온 김용덕(80)할머니는 냉장고와 세탁기, 김치냉장고를 장만했다. “손가락도 없는데 빨래하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소원 풀었다니까.” 장기진(89) 할아버지는 위암에 걸려 고생하는 조카며느리 수술비를 대줬다. 김정림(84) 할머니는 일본에 대한 미움을 풀었다. “일본 재판하러 갈 때 얼마나 대우를 잘하는지. 조상이 잘못해서 후세들이 고생하는 거다 싶으니까 불쌍하더라고.” 교회 헌금하고 장학금을 내놓고 필리핀에 복지시설을 건립하는 등 기부활동도 이어졌다.
냉랭한 외지인의 시선도 달라졌다. 버스를 태워주지 않아 걸었다녔는데 요즘 시내에 나가면 음식점이며, 옷가게며 어서오라고 반긴다. 주말이면 조용하기만 하던 섬이 친척과 아이들 웃음소리로 활기가 넘친다. 김정행(69) 원생자치회 회장은 “우리도 사회의 일원이라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지난 3월 1일 개통된 소록도와 녹동항을 잇는 다리, 소록대교(116m)에 대해 불만을 쏟아내는 것도 그래서다. 왕복 2차로에 인도가 없어 전동 휠체어를 타는 1~2급 장애인 514명(전체 주민 620명)은 통행이 오히려 불편해졌다.
이와 더불어 ‘한센인특별법’ 전면 개정도 추진하고 있다. 보상 대상과 범위가 좁은데다 한센인이 피해를 스스로 입증해야 하기에 대상자가 기껏해야 100여명에 불과할 것이라 관측됐기 때문이다. 이들은 일본이나 타이완처럼 객관적인 사실만 확인되면 일괄 보상하도록 법을 개정하라고 요구한다.
차별과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출처: 서울신문 2009년 5월18일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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