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야간 옥외집회를 금지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하 집시법)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습니다. ‘잠정 적용’이라는 단서조항 때문에 논쟁이 불거졌지만 이 조항이 역사속으로 사라질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오늘 저는 집시법 위헌성을 처음 인정한 첫 재조 법률가, 판사 박재영(사진·현 변호사)에 대해 얘기할까 합니다. 제가 그를 처음 본 곳은 법정입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7단독의 재판을 왜 방청하러 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날 박 판사의 재판 태도는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제가 바라던 ‘판사의 모습’을 한 단독판사가 구현하고 있었으니까요.
판사가 경력이 쌓이면 재판에 익숙해지면서 재판을 일로 여기게 됩니다. 피고인을 ‘사람’으로 만나지 못하고 ‘사건’으로 대하면서 재판은 지극히 사무적으로 변합니다. 생애 처음으로 재판을 받은 피고인은 판사의 성의 없는 태도에 크게 실망합니다. 합의부(재판장 1명+배석판사 2명)를 이끄는 부장판사는 그래도 40~50대니까 감내한다지만, 단독부(재판장 1명)는 30대라 나이 든 피고인은 모멸감까지 느낀다고 호소합니다. 재판을 경험한 국민 대다수가 마음으로부터 판사를 싫어하게 되니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점을 알고 있지만 저도, 몇 년째 재판을 방청하다 보니 판사의 사무적인 태도에 익숙해져 갔습니다. 그리던 어느날, ‘인간적인 판사 박재영’을 만났습니다. 판사 경력 10년이 넘었지만 그는 달랐습니다. 긴장한 피고인이 횡설수설하자 법원 직원에게 물 한잔을 갖고 오라고 청했습니다. “물 한잔 드시고 천천히 말씀하셔도 됩니다. 그래서 어떻게 된 일이지요?” 박재영 판사는 법대 앞으로 몸을 기대어 피고인의 변론에 귀기울였습니다. 결심할 때는 피고인에게 벌금을 낼 형편이 되는지 물었습니다. 법률적으로는 벌금형이 집행유예형보다 가볍지만, 생계가 어려운 어떤 피고인에게는 벌금 몇 백만 원이 집행유예 전과기록보다 버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선고할 때는 피고인을 위해 선고유예 등 법률용어를 자세히 설명해 줬습니다.
그래서 촛불사건 재판과 관련해 보수신문이 박재영 판사를 맹비난하는 것을 보며 저는 정말 기가 막혔습니다. 언론인의 한 사람이라는 게 부끄러울 지경이었지요. 광우병국민대책회의 안진걸 팀장에 대한 재판에서 박 판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야간집회금지 조항의 위헌성 논란이 있는 만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할 수도 있지만, ‘풀어주면 촛불집회에 다시 나가겠냐’는 질문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안 팀장은 “합법 집회와 야간 문화제 형식의 집회”에 “한 명의 시민”으로 참여하겠다고 답했습니다. 조선일보는 재판 모습을 전하며 “박 판사는 법복을 벗고 이제라도 시위대에 합류하는 게 나을 것”이라고 비난합니다.
박재영 판사의 평상시 재판 태도에 비춰보면 그는 촛불집회를 옹호한 것도, 안 팀장을 특별 대우한 것도 아닙니다. 물론 정치적인 계산이 있거나, 주목을 받기 위한 의도된 행보도 아니었습니다. 모든 피고인에게 그러듯 다정하게 묻고 편하게 답하도록 배려했을 뿐입니다. 박 판사가 언론 인터뷰를 한사코 사양하는 것도 ‘법률가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는 데 부산 떨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입니다. 박 판사는 “개인적으로 법복을 입고 있지 않다면 두 아이를 키우는 아빠의 입장에서….”라고도 말했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는 웃었습니다. ‘다정한 아빠 박재영’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니까요.
박재영 변호사는 두 아들을 둔 따뜻하고, 멋진 아빠입니다. 에피소드를 하나 들어볼까요? 집에 일찍 들어온 박 변호사는 아내의 심부름으로 초등학생인 아들을 데리러 학원에 갔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학원에 없었습니다. ‘땡땡이’를 친 것이지요. 아내에게 얘기했더니 “우리 모른 척하고 아이가 뭐라고 하는지 들어봅시다. 이번 기회에 혼내줘야 해요.”라고 제안했다고 하네요.
기다리던 아들이 들어왔습니다. 아내는 평소처럼 “학원 잘 다녀왔니?”라고 묻습니다. 아들이 “네”라고 답하며 뭐라고 설명하려는 순간, 박 변호사는 아들을 가슴으로 안아줍니다. 그리고는 “오늘 아빠가 학원에 갔는데 네가 없더라. 그래서 걱정했단다. 별일 없는거지?”라고 말을 가로챕니다. 작전에 실패한 아내는 눈을 흘겼지만 박 변호사는 아들의 등을 도닥거리며 방으로 보냅니다. 왜 그랬을까요? 박 변호사는 이렇게 대답입니다.
“부모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은, 학원을 가지 않은 것보다 더 큰 잘못이니까요. 부모가 아이에게 더 큰 잘못을 저지르도록 유도하면 되겠습니까? 이미 아이는 잘못을 깨닫고 반성하고 있는 데 말입니다.”
박재영 변호사의 모습을 좀더 엿볼까요? 박 변호사는 독실한 기독교인입니다. 술과 담배를 하지 않고, 새벽기도도 나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얘기를 하다 보면 ‘그분’ 얘기를 간혹 꺼냅니다. 그러나 강요는 전혀 없습니다. 사랑하는 연인을 떠올리듯 행복한 표정으로 ‘그분’과의 만남을 수줍게 고백합니다. 연애사를 훔쳐보는 것처럼, 기분 좋게 그의 얘기에 화답할 수 있습니다. 190cm 정도의 큰 키에 탄탄한 몸을 자랑하는 박 변호사는 만능 스포츠맨입니다. 특히 가족과 배드민턴을 즐긴다고 합니다. 못하는 운동이 거의 없는 것 같은데, 단 하나 골프만 치지 않습니다. 주말에 골프를 치면 가족과 함께할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판사 때는 공무원 월급으로 할 수 없는 운동이기도 했답니다.
지난 2월 법복을 벗은 그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다행히도 별로 달라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난여름 형사재판을 방청하려고 법정 밖 복도를 걸어갈 때입니다. 누군가 낮은 목소리로 ▲재판에서 판사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앞으로 어떤 법적 절차가 남았는지 ▲피고인의 입장을 어떻게 변론할 것인지 피고인 가족에게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변호사 사무실의 사무장일 거라고 추측했습니다. 변호사가, 법정 밖 복도에서 친절하게 설명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의 옆으로 지나는 순간, 박재영 변호사임을 알아봤습니다. 저는 반갑게 악수를 청했습니다. 그때 ‘인간적인 변호사’를 만나는 즐거움과 더불어 ‘인간적인 판사’를 잃은 속상함이 한꺼번에 밀려왔습니다. 불의에 당당히 맞서 ‘인간적인 사법부’를 만드는 디딤돌로 자리매김하지 못한 그가 한없이 야속해졌습니다. 판사 박재영에게 반했던 그 법정이 많이 그립기 때문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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