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로 다른 나라를 여행하는 유럽에서나 대륙을 횡단하는 북미에서 달리던 기차가 갑자기 고장났다고 멈추면 승객은 어떻게 할까요?
외국에서 기차를 많이 타지도 않았는데 저는 이런 일을 두 번 겪었습니다. 한 번은 1999년 캐나다에서, 또 한 번은 지난주(1월 9일, 10일) 독일에서 말입니다. 2010년 유럽연합(EU) 문화수도로 선정된 독일 루르지방 에센으로, 주말 출장을 떠났습니다. 옛 탄광 지구가 문화도시로 옷을 갈아입었다는 것도, 우리나라 독일 파견 광부 7936명을 기념하는 회관이 지난해 12월 이곳에 세워졌다는 것도 흥미로운 취재거리였죠.
9일 오전 11시쯤 도착해 밤 11시까지 눈보라가 몰아치는 옛 탄광 지역을 돌아다녔더니 덜컥 몸살감기가 걸렸습니다. 날이 밝자마자 10일 에센 중앙역으로 달려가 열차를 잡아탔지요. 독일 콜른(Koln)까지는 1시간 만에 도착했는데 브뤼셀행 열차가 여의치 않았습니다.
● “기술적 결함으로 열차가 멈춥니다.”
마침내 오른 기차, 2시간만 버티면 집에 도착한다는 기쁨에 쏟아지는 잠을 맘껏 즐기고 있는데 독일어와 불어, 네덜란드어에 이어 영어가 나옵니다. “열차에 기술적인 결함이 발견돼 다음 역 아헨(Aachen)에서 멈춥니다.” 아니 이건 무슨 소리인가요? 기차가 멈춘다니요. 정확하기로 유명한 독일 기차가 말입니다. “목적지가 브뤼셀인 승객은 다음 역에서 버스로 갈아타고 이동하십시오. 불편하게 해 죄송합니다.” 설명은 이게 다였습니다. 브뤼셀에 언제 도착하는지도, 열차가 멈춘 이유가 무엇인지 자세히 밝히지 않았습니다. 아, 하나 더 말했네요. 버스를 타고 싶지 않으면 아헨역에서 환불해주겠다는 것.
독일 콜른역을 출발해 벨기에 브뤼셀로 가던 열차가 1월 10일 독일 아헨역에서 기술적 결함으로 멈추자 여행가방을 든 승객들이 버스로 옮겨타고 있다.
99년 캐나다에서의 경험은 더 황당했습니다. 캐나다 중부도시 위니펙(Winnipeg)을 출발해 밴쿠버(Vancouver)로 가는 기차가 한나절을 달리더니 그냥 멈췄습니다. 그리고는 “기술적인 문제가 발생해 점검이 필요합니다.”라는 방송이 나왔습니다.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더니 다시 “결함이 심각해 밴쿠버까지 갈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기차는 다시 위니펙으로 돌아갑니다.” 라고 말하더군요. 그리고는 정말 기차가 그대로 방향을 바꾸어서 한나절 왔던 길을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어떻게 밴쿠버에 갔느냐고요? 열차 회사가 공항에서 저녁식사를 대접하고는 비행기를 빌려줬습니다.
● “기술적 결함으로 열차가 되돌아 갑니다.”
제가 놀란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승객들의 반응입니다. 분노하는 사람, 아니 화내는 사람조차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가족이나 약속한 사람에게 분주하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기는 하지만, 열차 직원을 붙잡고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따지거나, 큰소리를 지르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많은 여행 가방을 짊어지고도 직원의 지시에 순순히 따라 버스에, 비행기에 오를 뿐입니다. 일부 젊은 친구들은 이 상황이 너무나 재밌다며 낄낄거리며 좋아하기도 합니다. 캐나다에서는 비행기도 몇 시간 기다려야 했는데 마침내 항공기가 모습을 드러내자 승객들이 손뼉을 치며 환영했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저희 아빠의 한 말씀, “이 사람들 바보 아니냐?”
아헨역에서 브뤼셀로 가는 열차에 올라 제 옆에 앉은 아름다운 20대 벨기에 여성에게 물었습니다.
“기차가 멈춰 버스를 타야 하는 상황이 자주 있나요?”
“아니요, 전 처음 경험하는 일이에요.”
“아니, 그런데 이 문제로 열차 직원에게 항의하거나 화내는 사람이 없죠?”
“그 직원 잘못도 아니고, 그래서 뭐가 달라지는데요?”
“손해를 입었으니 보상도 요구해야 하고, 잘잘못도 따져야지요?”
“그건 열차 회사한테 할 일이고요. 집에 돌아가서 편지를 보내거나 인터넷에다 항의하거나 그러면 돼요. 근데 눈이 많이 와서 발생한 문제 같은데….”
그리고 버스는 기차 예정 도착시간보다 1시간이나 지나서 브뤼셀 북부역에 도착했습니다.
● 전광판에서 막차가 갑자기 사라졌다
브뤼셀로 돌아와 유럽 기자에게도 당시 상황을 들려줬습니다. 그 기자는 열차 회사의 잘못이라면 법률에 따라 보상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자연재해가 원인이라면 보상은 없다며 “유럽 사람은 원래 화를 잘 내지 않는다.”고 말하더군요. 또 다른 기자는 예정됐던 마지막 열차가 갑자기 사라졌던 자신의 경험을 들려줬습니다.
네덜란드의 작은 역에서 막차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전광판에서 기차 일정이 그냥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역 직원에게 물었더니 “전광판에 오류가 발생했던 것”이라면서 “마지막 열차는 이미 떠났다.”고 말했답니다. 그런데도 그 기자는 화도 내지 않고 그 역에서 밤을 새웠답니다. “항의를 더하면 그 역에서 내쫓겨서 잘 곳도 없어질 것 같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한국이었다면 어떤 일이 발생하느냐고 반문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열차가 멈춰 섰다면, 고장 때문에 열차가 가던 길을 되돌아온다면, 전광표 오류로 막차가 사라졌다면 무슨 일이 발생할까요? 짐작은 할 수 있으나 경험이 없으니 답하지 않았습니다.
덧붙임. 덕분에 저는 정말 혹독히 감기를 앓았습니다. 병원도 갈 수 없는 처지라 약국 약으로 버텨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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