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피고인으로 재판받은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헐값 발행 사건’의 파기환송심 공판준비기일이 지난 17일 열렸습니다. 정식 재판이 아니라 이 전 회장은 나오지 않았지만, 이날 방청석은 가득찼습니다. 이유는 이건희 전 회장이 형량을 줄여달라고 법원에 낸 양형 참고자료가 ‘거짓’으로 드러나고서 처음 열린 재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실망스러웠습니다. 삼성특검은 이건희 전 회장과 삼성이 말 바꾸기로 법원을 ‘기망’했는데도 이를 외면한 채 침묵했습니다. 법원도 이에 대해 따져 묻지 않았습니다.
 
 이건희 전 회장은 1심 선고가 내려지기 5일 전인 2008년 7월11일 서울중앙지법에 양형 참고자료를 제출했습니다. 이건희 전 회장이 특검의 공소장에 기재된 삼성에버랜드 손실액 970억 원과  삼성SDS 손실액 1540억 원을 각각 지급했고,  회사들도 이를 확인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당시 이 전 회장은 주식의 헐값 발행이 회사의 손해(배임)가 아니어서 무죄라고 주장했지만 “이 사건과 관련해 더는 논란이 계속되지 않기를 바라는 심정에서 삼성에버랜드와 삼성SDS 주식의 적정가치를 따지지 않고 (특검의) 공소장에 손실액으로 기재된 전액을 각 회사에 지급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죄는 없지만 ‘도의적 책임’은 지겠으니 선처해달라고 법원에 읍소한 것입니다.
 
 그 덕분인지 이 전 회장은 양도세 456억 원 포탈이 인정되었는데도 1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아 감옥살이를 피했습니다. 그 형량은 항소심(2심)에 이어 대법원(3심)까지 이어졌고, 현재 서울고법의 파기환송심(4심) 재판이 계속 중입니다.
 
 문제는 법원에서 ‘뜻한 바’를 이룬 이건희 전 회장 등이 돌변했다는 사실입니다. 삼성 측은 이 전 회장이 당시 돈을 지급한 것은 맞지만, “돈을 받을 근거가 불분명하고 회사손실액이 판결로 정해지지 않은 상태라 회계처리를 미루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대법원이 삼성에버랜드 헐값발행에 대해서 무죄 판결을 내렸으니 970억 원은 받지 않을 것이고, 삼성SDS에 대해서는 파기환송심이 인정한 손실액만 받겠다는 뜻입니다. 1심은 삼성SDS 손실액을 44억 원으로 계산했습니다. 회사에 낸 2510억원 가운데 2466억원은 이 전 회장이 돌려받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양형 참고자료로 내며 밝혔던 ‘도의적 책임’은 자취를 감췄습니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지만 ‘글로벌 기업’ 삼성의 말 바꾸기는 낯뜨거울 정도입니다. 익명의 제보자를 통해 이같은 사실을 확인한 경제개혁연대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회계처리 기준을 위반한 혐의(분식회계)로 금융감독원에 삼성에 대한 감리 실시를 요구했습니다. 

   제가 신기한 건, ‘피해자’인 법원과 삼성특검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대법원이 유·무죄 판단을 내린 상태(삼성에버랜드 무죄, 삼성SDS 유죄)라 파기환송심에서 양형을 치열하게 다퉈야 하는데도  ‘핫이슈’를 못본 체 외면하고 있습니다.  검사라면 당연히 피고인(이건희 전 회장)의 말바꾸기와 법원 기망을 낱낱이 파헤쳐 공격해야 하는데도 말입니다. 오히려 이 문제로 이건희 전 회장에게 실형을 선고하라는 여론이 들끓을까봐 겁을 내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삼성특검이 ‘특별검사’가 아니라 ‘삼성 변호인단’이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게다가 삼성특검은 이날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의 행사가격을 얼마로 정해야 적정한지에 대해서 재판부가 질문을 쏟아내는데도 ‘동문서답’만 했습니다.  적정 행사가격이 유죄와 면소(공소권이 없어 기소를 면하는 일)를 가르는 잣대인데도 1년 전 공소장에 기재한 시가 5만 5000원만을 앵무새처럼 반복했습니다.
 
 보다 못한 재판부가 ‘기존주식의 시가와 더불어 회사의 재무구조, 영업전망, 그에 대한 시장의 평가, 금융시장의 상황, 신주의 인수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합리적으로 인정되는 가격을 산정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을 읽어가며 수익가치를 기업회계 기준으로 추정할지, 세무회계 기준으로 추정할지 묻는데도 삼성특검은 처음 듣는 얘기라는 듯 우왕좌왕했습니다. 기업회계를 기준으로 삼으면 삼성SDS가 입은 손해액이 100여억원을 넘어 유죄 선고가 가능하지만, 세무회계 기준으로 하면 손해액이 44억원으로 줄어 면소 판결을 해야 합니다. 손실액을 50억원 이하로 줄여 공소시효 7년의 혜택(면소)을 받으려고 온갖 계산법을 동원하는 삼성변호인단의 모습과 너무나 대조적이었습니다.
 
 한숨만 내쉬다가 법정을 나왔습니다.  이건희 전 회장이 출석하는 오는 29일 파기환송심 정식 재판에서는 삼성특검의 ‘날카로운 칼’을 볼 수 있을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Trackback Address :: http://ejung.blog.seoul.co.kr/trackback/66 관련글 쓰기

  1. Tracked from 오늘을 증언한다 2009/08/13 18:35 삭제

    Subject: ‘500원’이 이건희 회장의 운명을 좌우한다

    이건희(사진) 전 삼성그룹 회장의 파기환송심(4심) 선고공판이 14일 오전 10시 서울고법 청사 417호에서 열립니다. 이날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 김창석)가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의 주당 적정가치를 1심 재판부(9740원)보다 500원이라도 더 매기면 이건희 전 회장의 ‘감옥행’은 현실이 됩니다. 1심과 항소심(2심)에서 이건희 전 회장은 조세포탈 혐의만으로 이미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원을 받았습니다. 대법원(3심)..
  1. BlogIcon 쏠트[S.S] 2009/07/27 18:45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삼성변호사라는 말에 공감한표입니다..
    돌아가는 걸 보니 정말 답답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