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눈물

女談餘談 2009/07/31 15:11
용산 철거민 화재 참사가 발생한 지 이틀째인 지난 1월21일 임시 분향소에서 분향을 마친 한 주민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눈물이 주책없이 많다. 책·영화를 보며 우는 것은 기본이고, 지하철에서 신문을 읽다가도, 슈퍼마켓에서 드라마를 5분간 흘낏거리다가도 눈물이 핑 돈다. 취재원이나 신문사 선배에게 마음 상하는 말을 듣고는 화장실에서 우는 것도 자주 하는 짓이다. 다행이라면 우는 술버릇이 없다는 정도.

 그래서인지 ‘남자의 눈물’에 상당히 우호적이다. ‘남자는 눈물을 보이면 안 된다.’라는 고정관념이 깨진 시대지만, 우는 남자가 드물어 왠지 눈물에 절실함이 묻어나서다. 아내가 뇌출혈로 쓰러져 병원에서 생사를 가르는 수술을 받는 동안 하얀 벽에 기대어 목놓아 우는 한 중년의 남자, 간첩 누명을 쓰고 18년간 감옥살이하다 다시 재판을 받아 28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고 흐느끼는 한 할아버지, 나를 버린 조국을 20년 만에 찾아와 친어머니에게 ‘용서한다’고 말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한 청년…. 그 뜨거운 눈물이 감동으로 남는다.

 남자의 눈물을 법원에서도 많이 만났다. 법정에 서면 재벌회장도, 전 정권 실세도, 국회의원도 울먹인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은 지난해 7월1일 “삼성전자 제품 11개가 세계 1위에 올랐습니다. 1위는 정말 어려워요.”라고 말하며 목이 멨다.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2003년 12월1일 뇌물 등 혐의로 징역 20년을 구형받고 흐느꼈다.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이광재 민주당 의원은 지난 3월27일 정계 은퇴를 선언하며 눈물을 쏟았다.

 30일 또 한 남자가 ‘울었다.’ 김준규 검찰총장 후보자가 기자간담회 때다. “모함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발표 당일 아침 아내가 울면서 ‘그거 해서 뭐하나. 차라리 그만두자.’고 하더라.” 그 순간 그는 감정이 북받치는 듯 말을 잇지 못했다. 검사의 눈물은 처음 봤다.

 간담회장을 나오며 한 남자 기자가 “그런 일로 무슨 눈물까지”라고 평했다. 그러나 나는 그의 눈물이 반가웠다. 음해의 고통을 경험한 그가 ‘표적 수사’로 피눈물 흘리는 국민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에서다. 그의 눈물이 ‘악어의 눈물’로 변하지 않기를 기원한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출처: 서울신문 2009년 8월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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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둘시네아 2009/07/31 17:00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남자의 눈물, 여러가지 경우와 의미가 있겠지만 일단 남자답지 않아서 좋아보입니다. 같은 의미로, 기자답지 않은 '응시'가 보이는, 좋은 글이네요. 잘 읽고 갑니다.

  2. 페스트 2009/08/03 17:12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은 지난해 7월1일 “삼성전자 제품 11개가 세계 1위에 올랐습니다. 1위는 정말 어려워요.”라고 말하며 목이 멨다." 그렇군요. 그런 세계적 회사가 되기 위해 노조를 못만들게 하고 그랬던거죠. 그야말로 1위에 "목맨" 짓. 적어도 한국사회에서는 1등들이 가장 큰 문제. 그의 눈물은 남자의 눈물 이전에 악덕기업가의 눈물이요, 그와 마찬가지로 이준규의 눈물은 남자의 눈물 이전에 공권력의 최첨병에 서있는 자의 눈물이란 것도 잊지 말았으면 좋겠네요.

    • BlogIcon 꿈뱀파이어 2009/08/03 19:47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말씀 잘 들었습니다. 이건희 전 회장에 대한 저의 다른 글들을 읽어보시면, 페스트님의 '분노'가 약간 사그라들지 않을까 싶은데요..

  3. 토끼 2009/08/13 09:08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억울하겠지요. 주위사람들보다 덜하면 덜했지 더하지 않았다고 생각할 테니까요. 그런 눈물을 악어의 눈물이라고 하던가요?
    표적수사로 피눈물 흘리는 사람들 더 닥달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