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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곁에 문재인 변호사가 있다면,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곁에는 박지원 민주당 의원이 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의 곁을 26년간 지킨 한 남자의 이야기를 제가 아는 대로 남기려 합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했습니다.”
 8월 4일 박지원 의원이 클린턴 방북 소식을 전하자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눈빛이 흔들렸습니다. 꼬일 대로 꼬인 남북문제를 해결할 물꼬를 클린턴 전 대통령이 텄다는 반가움 때문이었을 겁니다. 폐색전증으로 기력이 없는 데도 김 전 대통령은 클린턴 방북과 관련한 신문기사를 다 읽어달라고 청했습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북한에 억류된 미국 여성 언론인 석방 협상을 위해 4일 전격적으로 방북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다…” 박 의원은 신문을 읽어 갔고, 그 목소리를 들으며 김 전 대통령은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이후 상태가 나빠져 김 전 대통령은 안정과 위험을 오가다 결국 안정제를 투여받고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눈빛으로 이희호 여사와 가끔 대화를 나눴지만 더는 글을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때문에 김 전 대통령이 접한 생애 마지막 글이 ‘클린턴 방북 기사’가 됐습니다. 한반도의 평화를 걱정하는 김 전 대통령의 마음을 헤아려 임종하는 순간까지, 현정은 현대아산 회장의 방북과 다섯 가지 합의 등을 박 의원은 보고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이 7월 13일 폐렴증상으로 서울 신촌 연세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한 후 박 의원은 그날그날 일들을 보고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이 위독할 때면 밤을 지새며 그의 곁을 머물렀습니다.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있던 13일에도 밤 11시가 넘어 병원에 들렀습니다. 피곤할 만도 한데, 청문회가 끝나자마자 병원으로 달려간 것입니다. 9시쯤이면 잠을 청하는 김 전 대통령도 박 의원을 기다리고 계셨지요. 청문회 이야기를 다정히 나누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 측근은 ‘아버지와 아들 같았다.’고 전했습니다.
 
 박 의원이 김 전 대통령을 만난 것은 1983년 5월24일이라고 합니다. 당시 박 의원은 41세, 김 전 대통령은 59세였습니다. 5·18 광주민주화 운동을 배후·조정했다는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고 청주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김 전 대통령이 형 집행정지로 풀려나 미국으로 망명했을 때입니다. 박 의원은 당시 뉴욕 한인회장이었지요.
 
 박 의원은 첫 만남 때 ‘DJ 사람’이 되기로 했다고 합니다. 그런 얘기가 여기저기서 들리는 걸 보면 김 전 대통령이 참 매력적인 분이셨나 봅니다. 박 의원은 92년 대선 때부터 김 전 대통령의 ‘입’ 역할을 했습니다. 청와대 수석, 문화관광부 장관,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고, 동교동계가 받아들인 유일한 외부인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이 퇴임한 후에는 김대중 평화센터의 비서실장을 맡아 그의 곁을 끝까지 지켰습니다.
 
 위기도 있었습니다. 대북송금 특검수사와 재판이 한창이던 2004년입니다. 제가 박 의원을 처음 만났던 때이기도 하지요. 당시 박 의원은 현대비자금 150억 원을 받았다는 혐의로 1심 재판부에서 징역 14년 6개월을 선고받았습니다. 박 의원은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지만, 여론은 나빴고 그는 녹내장·우울증·협심증까지 얻어 신촌 연세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하고 맙니다.
 
 2004년 6월 2일 김 전 대통령은 예고 없이 불쑥 박 의원을 면회하러  병원를 찾습니다. 박 의원이 구속된 후 첫 만남이었습니다. 당시 박 의원은 “제가 이런 처지가 돼서 대통령님께 면목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대통령님께 맹세코 150억 원을 받은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며 오열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나라를 위해 일하다가 모함을 당하고 고초를 당하는 것을 억울해하지 말고 몸 관리 잘하면서 잘 이겨내라.”고 위로했습니다. 다행히 박 의원은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풀려납니다.
 
 오늘도 박 의원은 국회의사당에 마련된 빈소에서 김 전 대통령의 곁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 남자가 있어 김 전 대통령의 ‘하늘길’이 덜 외로울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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