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 재판정 모습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결식으로 잊혀진 뉴스가 있습니다. 바로 헌법재판소에서 심리 중인 방송법 등 언론관련법 권한쟁의심판 소식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김 전 대통령의 서거로 한나라당은 자숙하면서도 이로써 방송법 날치기 사건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는 것에 기뻐할지 모릅니다. 우리가 오늘도 깨어 헌재의 방송법 권한쟁의심판에 주목해야 할 이유입니다.
청구인 측 공동변호인단은 지난 14일 국회 본청 내부의 폐쇄회로(CC)TV 영상물 등 국회 자료를 헌법재판소에서 넘겨받았습니다. 지난 5일 헌재의 요청에 따라 국회 사무처가 제출한 본회의장 밖 CCTV 16대의 영상물과 법안별 투표현황 기록, 본회의 회의록, 음성기록 테이프 등입니다.
그러나 국회 자료를 넘겨받은 공동변호인단은 별로 만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단장인 김갑배 변호사는 “영상물을 확인해 보니 본회의장 내부 촬영분은 전혀 없고, 외부 촬영분도 화질이 나빠 인물을 제대로 구분하기가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가족이나 보좌관 등 국회의원을 잘 아는 사람이 보지 않으면 누가, 누구인지 알아보기 어렵다는 얘기입니다.
이에 공동변호인단은 MBC 등 방송사가 당시 현장에서 녹화한 영상물 원본을 증거로 보전해달라고 추가로 헌재에 신청했습니다. 화질이 좋은 방송사 카메라에 잡힌 국회의원의 모습을 분석해 대리투표 등을 밝혀내겠다는 뜻입니다. 헌재 재판관이 본회의장에서 전자투표 시현을 직접 봐야 한다며 국회 현장검증도 신청했습니다.
헌재의 방송법 권한쟁의심판을 저는, 날치기의 악습을 끊어낼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수당이 법률안 통과를 힘으로 밀어붙이면서 발생한 절차상 문제를, 헌재가 엄격한 법적 잣대로 제재해 앞으로, 국회가 함부로 날치기를 감행하지 못하도록 하자는 게 제 의견입니다. 이를 위해 권한쟁의심판을 맡은 청구인 측 공동변호인단에 세 가지를 제언합니다.
1. 정치권과 거리를 둬라.
거리에서 국민을 직접 만나 지지를 호소하는 일은 정치인의 몫입니다. 언론과 접촉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변호사의 자리는 재판정(법정)입니다. 아무리 분노가 들끓더라도 변호사는 거리가 아니라, 그가 아니면 앉을 수 없는 그 ‘특별한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이는 권한쟁의심판에서 승소하기 위한 전략이기도 합니다. 헌재 재판관 9명은 대통령과 여·야당, 대법원장의 추천으로 임명됩니다. 이강국 소장과 이번 사건을 전담하는 김희옥·송두환 재판관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공현·김종대·민형기 재판관은 대법원장이 임명했습니다. 조대현 재판관은 열린우리당, 이동흡 재판관은 한나라당, 목영준 재판관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합의로 추천됐습니다. 추천·임명자가 다른 만큼 재판관은 ‘정치적 사건’에서 자신의 색깔을 드러낼 가능성이 큽니다.
재투표가 정치적으로 논란이 있다지만, 법률적으로는 일사부재의(一事不再議) 원칙에 어긋난다는 게 법조계 중론입니다. 그럼에도, 방송법 재투표를 ‘정치적 사건’으로 몰아가면 재판관은 여론이나 자신을 추천한 정치권을 의식해 법률적 기준이 아니라 정치적 기준으로 결론을 도출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변호사는 정치적 해석을 완전히 배제하고, 법률적 논리로만 재판관을 설득해야 합니다. 이것이 재판관의 ‘정치적 결단’을 차단하는 방법입니다. 이때 재판관도 정치적 부담에서 벗어나 법률가로서 사건을 심리하고, 법률가로서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특히 권한쟁의심판은 재판관의 과반수(5명) 이상이 인용(認容·이유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그 주장을 받아들이는 결정을 내리는 것)하면 청구인이 승소하는 것이기에 재판관 한 명, 한 명의 결정이 매우 중요합니다.
2. 신속하게 대응하라.
김형오 국회의장의 전략은 ‘늦장 대응’으로 보입니다. 방송법이 시행되는 10월31일까지 헌재가 권한쟁의심판의 심리를 마무리하지 못하도록 시간을 질질 끌다가 시행일이 지나면, ‘헌재가 방송법을 무효라고 선언하면 선의의 피해자(조·중·동 등 신문사)가 생긴다.’는 논리를 내세울 태세입니다. 김 국회의장이 헌재가 요구한 제출 기간(24일)을 넘어서까지 답변서를 제출하지 않고 있고, 변호인단도 방송법이 통과된 지 20일이 지난, 8월12일에야 선임한 것이 이런 해석을 뒷받침합니다.
반면 헌재는 ‘속전속결’로 결판을 보려고 합니다. 방송법 권한쟁의 심판을 시행일(10월31일) 이전에 마무리해 헌재가 따로 효력정지 가처분을 결정할 필요가 없게 하려는 전략입니다. 지난해 ‘이명박 특검법’ 헌법소원 때도 13일 만에 헌재가 본안 심판을 끝냄으로써 가처분 신청을 기각시켰습니다. 헌재 심리가 통상 1~2년 걸리는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속도’입니다.
여러 곳에서 헌재의 의중을 읽을 수 있습니다. 7월23일 야 4당 의원 93명이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자 이튿날 바로 김 의장에게 ‘늦어도 30일 안에 답변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했고, 야당이 국회 CCTV 영상물에 대해 증거보전을 신청하자 며칠 만에 국회에 자료를 제출하라고 명령했습니다. 헌재 관계자도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건, 또는 신속하게 처리해야 할 사건에 대해서는 헌재가 빨리 처리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제 변호인단도 발빠르게 대응해야 합니다. 법률적 쟁점을 분석하고, 비슷한 선례와 외국 판례, 각종 학술 논문 등 관련 자료를 수집해 헌재에 신속히 제출해야 합니다. 정기 공개변론일인 9월10일, 헌재가 방송법 권한쟁의심판을 심리할 수 있도록 그전에 국회 본회의장 영상물 분석도 마쳐야 합니다. 민주당 등 정치인은 늦장 대응하는 한나라당에 “정정당당하게 맞서라”고 요구하며 측면에서 지원할 수 있습니다.
3. 돌다리도 두드려 가라.
만나보니 ‘당연히 승소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변호인이 많습니다. 법리적으로 따져보면 분명히 승소 가능성이 큰 게 사실입니다. ▲방송법 수정안에 대해 “투표를 종료한다.”고 선언한 후에 표결 결과를 선포하지 않았고 ▲법률상 근거가 없는데도 재투표를 시행했으며 ▲한 번 부결된 안건은 같은 회기 내 다시 제출할 수 없다는 원칙을 위반했기 때문입니다.
근거 법률(국회법)
제113조(표결결과선포) 표결이 끝났을 때 의장이 그 결과를 의장석에서 선포한다.
제114조 3항(투표절차) 투표의 수가 명패의 수보다 많을 때에는 재투표를 한다.
제92조(일사부재의) 부결된 안건은 같은 회기 중에 다시 발의 또는 제출하지 못한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때 헌재 재판관 일부가 ‘탄핵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행정수도 위헌심판 때 재판관 다수가 ‘관습헌법’이라는 신종 개념을 내세워 위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결론을 정해놓고 이유·근거를 찾는 작업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조직’이라는 얘기입니다. 이 때문에 변호인단은 돌다리도 두드려서 건넌다는 심정으로 법적 논리를 정교하게 다듬어 재판관이 빠져나갈 수 없게 하여야 합니다.
권한쟁의심판 청구인의 변호인단이 법률가다운 냉정함과 치밀함으로 날치기 악습을 대한민국에서 없앨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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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acked from 오늘을 증언한다 2009/08/25 11:44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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