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브뤼셀을 시작으로 네덜란드 헤이그, 독일 뮌헨, 오스트리아 비엔나, 이탈리아 로마를 거치는 1차 취재여행을 마쳤습니다. 핵심 주제는 ‘’국제법률기구 탐방’이고, 부속 주제는 ‘독일과 오스트리아 사법제도 탐방’입니다. 일정이 빡빡해 힘겨웠지만, 그만큼 재밌고 인상적인 여정이었습니다.

 
 국제법률기구로는 ▲ 헤이그국제사법회의(HCCH), ▲ 구유고국제형사재판소(ICTY), ▲ 유엔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 ▲ 국제해양법재판소(ITLOS), ▲ 사법통일국제연구소(UNIDROIT) 등을, 유럽 사법기관으로는 ▲ 독일 바이에른 주 법무부, ▲ 오스트리아 대법원, 항소법원 등을 다녀왔습니다.

 자세한 취재내용이야 서울신문 기사로 전하겠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국제법률기구에서 일하는 ‘젊은 한국인 법률가’과의 만남이었습니다. 로스쿨이 도입되면서 세계로 뛰어든 젊은 법률가가, 정말 놀랍도록 많더군요. 발 빠른 그들은, 발 빠른 인터넷을 통해 ‘자기 힘으로’ 국제기구에서 인턴도 하고, 정식 직원으로도 채용돼 있었습니다.

 어떻게 국제법률기구에서 일하는 행운을 얻었는지 그 노하우를 저는 알짜배기로 취재했습니다.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했습니다. 도전의식을 갖고 열린 공간으로 당당히 걸어 들어가는 것이지요. 물론 그 이전에 ‘나만의 무기’를 장착해야 하지만요.^^

 나만의 무기는 남들이 가지 않는 ‘좁은 길’이었습니다. 국제법률기구에서 일하고 싶은 법률가들은 흔히 국제법에 온 마음을 쏟습니다. 국제법에 정통해야 국제법률기구에서 일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지요. 또한 영어공부에 열을 올립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국제법률기구에서 일하게 된 그들은 그런 예측가능한 길을 걷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남들이 열을 올리는데 살짝 빗겨났고, 그 때문에 국제기구에서 일할 수 있었습니다. 영어보다는 프랑스어에, 국제법보다는 컴퓨터에 더 정통했다고나 할까요.

 국제법률기구에서 일하면서 국제법을 모른다면 그건 말이 안 되지요. 기본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위에 나만의 전문성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국제법을 아무리 잘 알아도 만찬가지입니다. 국제법에 도 통한 사람은, 국제법률기구에 차고도 넘칩니다. 젊은 그대가, 국제기구에서 수십년간 녹을 먹은 베테랑보다 더 국제법을 잘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유엔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에서 일하는 이아름씨는 외대에서 학사, 석사로 법학을 공부했고, 미국 카네기멜론 대학에서 컴퓨터를 전공했습니다. 유엔 입사시험에 합격한 그는 UNCITRAL에서 국제 전자상거래법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씨는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미국에서 다녀서 영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장점이 있지만, UNCITRAL가 그를 선택한 이유는 영어 때문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미국인, 영국인을 선택했어야지요. 국제법, 법률을 알면서도  컴퓨터를 알고 있는 사람, 그래서 전자상거래를 법과 접목할 수 있는 인재를 국제법률기구는 찾았고, 이씨가  그 적임자였던 것입니다.  게다가 인터넷 강국인 한국인이니 마다할 이유가 없지요. 그 흔치 않은 이씨의 경력이 유엔을 매료시켰던 것입니다.

 헤이그국제사법회의(HCCH)에서 한국인 최초의 인턴을 하고 있는 이선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연세대 국제대학원을 졸업하고 2009년 HCCH가 후원하는 세계적인 법률프로그램인 헤이그 아카데미 사법(private law) 분야를 인터넷을 통해 지원했습니다. 꼼꼼한 준비 덕에 그녀는 전액 장학금에 생활비까지 받고 헤이그의 여름을 즐겼습니다. 단 한 번도 외국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토종 한국인’이지만, 영어는 물론 프랑스어까지 구사해 HCCH 관계자를 사로잡았습니다. 결국 사법회의는 이씨에게 인턴을 제안했고, 그녀도 원광대 로스쿨 학생이지만 흔쾌히 응했습니다.

  

헤이그국제사법회의의 최초의 한국인 인턴인 이선(왼쪽)씨와 유엔국제상거래법위원회 직원으로 발탁된 이아람(오른쪽)씨.

 이번 취재로 깨달은 것은, 젊은 한국인 법률가가 국제법률기구에 문을 두드리는 것만큼이나 국제법률기구도 한국인 법률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유럽 국가 간 법률 통합을 위해 만들어진 국제법률기구가, 유럽연합(EU)의 탄생으로 그 생존의 이유를 잃어가자 자신의 목표를 세계 법률의 조화와 통합으로 바꾸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아시아 국가의 법률, 그리고 아프리카 국가의 법률을 조율하고 통합하려고 그들은 이제 막, 용트림을 시작했습니다. 한국인 법률가가 좋은 코디네이터로 그 도전에 함께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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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구름마을 2010/01/27 14:55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잘 읽었습니다.

    유능한 인재들이 눈을 세계로 돌리지 못하고,
    좁은 국내의 몇몇 자리를 놓고 아웅다웅하는 것은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유학을 하고 돌아와 자리를 잡은 선생이나 선배들이 자신이 걸었던 길보다
    보다 빠르고 편한 길을 개척해 열어 주거나, 눈을 넓힐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저 한국에서의 지위와 평판에 안주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오늘 소개해 준 분들과 같은 세대가 성장하면 달라지겠지요.
    저도 이제 바다로 나아가는 입장에서 넓은 안목을 가지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앞 세대를 나무라면서 그 자리만이 탐나서 추종하는 이들에게 너무 실망해서요.

    계속 좋은 정보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2. BlogIcon 공생인간 2010/02/03 23:57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독일에서 유럽학 석사 마치고 저도 한때 국제기구에 지원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죠. 하지만 나이가 좀 많다는 것(당시 31세) 남자라는 것(국제기구의 경우 여자들을 우선 뽑는 경향이 있죠) 마지막으로 프랑스어를 못한다는 것이 걸리더군요. 독어를 조금 했지만 역시 국제기구에 들어가려면 여전히 영어와 프랑스어는 '기본'이더라고요. 남의 나라에서 꿋꿋이 살아가는 분들을 보니 대견하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하네요.

    • BlogIcon 꿈뱀파이어 2010/02/05 07:16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참, 부러운 청춘을.. 이곳에서 많이 만났는데요.. 그 기사가 월요일자(8일)로 나갑니다. 덕분에 전 마무리 취재에 기사쓰기에 머리가 깨질 듯해요.^^

  3. 서진맘 2010/02/04 22:51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언니~안녕하세요? 서진맘이에요.

    떠나기 전날 차분한 언니의 모습을 봐서, 역시 해외경험 많으셔서 그러시는가 했었는데,
    첫 글에서의 공항 짐 사건은 이미 지난 일인데도 저까지 긴장하게 만드네요,^^;

    엄니가 힌트까지 주셨는데, 하필 전화받았을 때가 또 다른 바보상자인 컴퓨터 앞이라 금새 깜빡했어요;;
    늦게나마 생일 축하드리고, 오시면 언니가 항상 그랬던 것처럼 이쁘고 맛있는 케익 사드릴께요~ 앗 유럽이라 케익 질리시면 떡으로?

    파트너 이야기에 괜히 가슴이 시리네요, 저희가 잘 감시할랬는데 약속이 무지 많으신가 봅니다,,ㅋㅋ
    제 파트너도 요즘 밤마다 약속이 많으신데, 혹시 두 분이서 같은 시간과 장소를 공유하시며 다니시는건지 ㅡ.ㅡ;;;

    몸살 꼭 조심하시고요~
    2달 후에 건강히 뵈요~

    • BlogIcon 꿈뱀파이어 2010/02/05 07:18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누군가했더니..^^ 한번도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는데.. 동서가 서진맘이구나..
      이곳 이야기를 더 많이 써야하는데..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네..

  4. BlogIcon 노예림 2010/03/20 05:59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McGill대학교 항공우주법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공부중인 노예림이라고 합니다.
    다음주에 ICAO 인턴십 면접이 있는데, 혹시 도움되는 자료를 찾을 수 있을까 하여 검색하다가
    이 블로그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ICAO에서 일하신 적이 있던데 혹시 면접에서 어떤 것을 주로 물어보는지요?
    저는 점심 식사를 하며 면접을 보자고 사던데
    어떤 형태로 진행되나요?
    필요한 서류를 물어보았더니
    CV를 인쇄해 오라는 정도였습니다.
    제 이메일로 연락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yelim.ro@mail.mcgill.ca


    감사합니다.


 

 기차로 다른 나라를 여행하는 유럽에서나 대륙을 횡단하는 북미에서 달리던 기차가 갑자기 고장났다고 멈추면 승객은 어떻게 할까요?
 
 외국에서 기차를 많이 타지도 않았는데 저는 이런 일을 두 번 겪었습니다. 한 번은 1999년 캐나다에서, 또 한 번은 지난주(1월 9일, 10일) 독일에서 말입니다. 2010년 유럽연합(EU) 문화수도로 선정된 독일 루르지방 에센으로, 주말 출장을 떠났습니다. 옛 탄광 지구가 문화도시로 옷을 갈아입었다는 것도, 우리나라 독일 파견 광부 7936명을 기념하는 회관이 지난해 12월 이곳에 세워졌다는 것도 흥미로운 취재거리였죠.

 9일 오전 11시쯤 도착해 밤 11시까지 눈보라가 몰아치는 옛 탄광 지역을 돌아다녔더니 덜컥 몸살감기가 걸렸습니다. 날이 밝자마자 10일 에센 중앙역으로 달려가 열차를 잡아탔지요. 독일 콜른(Koln)까지는 1시간 만에 도착했는데 브뤼셀행 열차가 여의치 않았습니다.
 

 기술적 결함으로 열차가 멈춥니다.


 마침내 오른 기차, 2시간만 버티면 집에 도착한다는 기쁨에 쏟아지는 잠을 맘껏 즐기고 있는데 독일어와 불어, 네덜란드어에 이어 영어가 나옵니다. “열차에 기술적인 결함이 발견돼 다음 역 아헨(Aachen)에서 멈춥니다.” 아니 이건 무슨 소리인가요? 기차가 멈춘다니요. 정확하기로 유명한 독일 기차가 말입니다. “목적지가 브뤼셀인 승객은 다음 역에서 버스로 갈아타고 이동하십시오. 불편하게 해 죄송합니다.” 설명은 이게 다였습니다. 브뤼셀에 언제 도착하는지도, 열차가 멈춘 이유가 무엇인지 자세히 밝히지 않았습니다. 아, 하나 더 말했네요. 버스를 타고 싶지 않으면 아헨역에서 환불해주겠다는 것.

독일 콜른역을 출발해 벨기에 브뤼셀로 가던 열차가 1월 10일 독일 아헨역에서 기술적 결함으로 멈추자 여행가방을 든 승객들이 버스로 옮겨타고 있다.

 
 99년 캐나다에서의 경험은 더 황당했습니다. 캐나다 중부도시 위니펙(Winnipeg)을 출발해 밴쿠버(Vancouver)로 가는 기차가 한나절을 달리더니 그냥 멈췄습니다. 그리고는 “기술적인 문제가 발생해 점검이 필요합니다.”라는 방송이 나왔습니다.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더니 다시 “결함이 심각해 밴쿠버까지 갈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기차는 다시 위니펙으로 돌아갑니다.” 라고 말하더군요. 그리고는 정말 기차가 그대로 방향을 바꾸어서 한나절 왔던 길을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어떻게 밴쿠버에 갔느냐고요? 열차 회사가 공항에서 저녁식사를 대접하고는 비행기를 빌려줬습니다.

 ● “기술적 결함으로 열차가 되돌아 갑니다.”


 제가 놀란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승객들의 반응입니다. 분노하는 사람, 아니 화내는 사람조차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가족이나 약속한 사람에게 분주하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기는 하지만, 열차 직원을 붙잡고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따지거나, 큰소리를 지르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많은 여행 가방을 짊어지고도 직원의 지시에 순순히 따라 버스에, 비행기에 오를 뿐입니다. 일부 젊은 친구들은 이 상황이 너무나 재밌다며 낄낄거리며 좋아하기도 합니다. 캐나다에서는 비행기도 몇 시간 기다려야 했는데 마침내 항공기가 모습을 드러내자 승객들이 손뼉을 치며 환영했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저희 아빠의 한 말씀, “이 사람들 바보 아니냐?”
 
 아헨역에서 브뤼셀로 가는 열차에 올라 제 옆에 앉은 아름다운 20대 벨기에 여성에게 물었습니다.
 “기차가 멈춰 버스를 타야 하는 상황이 자주 있나요?”
 “아니요, 전 처음 경험하는 일이에요.”
 “아니, 그런데 이 문제로 열차 직원에게 항의하거나 화내는 사람이 없죠?”
 “그 직원 잘못도 아니고, 그래서 뭐가 달라지는데요?”
 “손해를 입었으니 보상도 요구해야 하고, 잘잘못도 따져야지요?”
 “그건 열차 회사한테 할 일이고요. 집에 돌아가서 편지를 보내거나 인터넷에다 항의하거나 그러면 돼요. 근데 눈이 많이 와서 발생한 문제 같은데….”

   그리고 버스는 기차 예정 도착시간보다 1시간이나 지나서 브뤼셀 북부역에 도착했습니다.

 ● 전광판에서 막차가 갑자기 사라졌다
 
 브뤼셀로 돌아와 유럽 기자에게도 당시 상황을 들려줬습니다. 그 기자는 열차 회사의 잘못이라면 법률에 따라 보상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자연재해가 원인이라면 보상은 없다며 “유럽 사람은 원래 화를 잘 내지 않는다.”고 말하더군요. 또 다른 기자는 예정됐던 마지막 열차가 갑자기 사라졌던 자신의 경험을 들려줬습니다.

    네덜란드의 작은 역에서 막차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전광판에서 기차 일정이 그냥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역 직원에게 물었더니 “전광판에 오류가 발생했던 것”이라면서 “마지막 열차는 이미 떠났다.”고 말했답니다. 그런데도 그 기자는 화도 내지 않고 그 역에서 밤을 새웠답니다. “항의를 더하면 그 역에서 내쫓겨서 잘 곳도 없어질 것 같았다.”고 말합니. 그리고는 한국이었다면 어떤 일이 발생하느냐고 반문했습니다.

   리나라에서 열차가 멈춰 섰다면, 고장 때문에 열차가 가던 길을 되돌아온다면, 전광표 오류로 막차가 사라졌다면 무슨 일이 발생할까요? 짐작은 할 수 있으나 경험이 없으니 답하지 않았습니다.
 
 덧붙임. 덕분에 저는 정말 혹독히 감기를 앓았습니다. 병원도 갈 수 없는 처지라 약국 약으로 버텨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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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구름마을 2010/01/17 14:33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음... 1등인가요?ㅎㅎ

    우선 몸조리부터 하셔야겠네요.

    울나라 사람들이 화를 내는 이유는... 열차가 멎었을 때, 대체교통수단을 마련해 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도 그렇고 유럽도 그렇고... 열차에 문제가 생기면 "더 갈 수 있는가, 없는가"를 제일 먼저 판단하고...
    "더 갈 수 없다"면 대체열차나 버스(전세버스겠죠?)를 수배해서 어쨌든 늦더라도 목적지에 데려다 줍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비슷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상황을 판단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훈련이 거의 되어 있지 않습니다.
    "급하면 환불한 후 버스를 타던 택시를 대절하던 네가 알아서 가라. 기다릴거면 기다리고"가 대부분이죠.
    대체교통편을 마련하거나 안내해 주려는 생각조차 거의 하지 않죠.
    기다리다 지친 승객들이 항의를 하고 화를 내면 그제야 움직이기 시작하니...

    그런 시스템에서 살아남으려다 보니 거친 대응을 유발(?)하는 측면도 있고,
    거친 대응이 없으면 적극적으로 대안을 모색할 필요가 없다는 식의 내성(?)도 생긴게 아닐까 합니다.

    • BlogIcon 꿈뱀파이어 2010/01/17 21:21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으니 상대방을 신뢰할 수 없고,
      결국 개인이 모든 걸 떠안아야 하는...
      (교육, 복지 등 모든 분야에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와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설득력 있는 분석입니다.^^

  2. 2010/01/18 00:48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언니~ 나여.. 전화도 한 번 제대로 몬하고 보내 버렸네. 미안미안...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서 들렀는데 벌써 포스트가 많네.
    종종 올테니까 벨기에 소식 많이많이 들려줘. 대리만족이라도.. ^^
    글구 열심히 하는 것도 좋은데 몸도 챙겨가면서 쉬엄쉬엄 햐.
    전기장판밖에 없는데 감기 걸리면 우짜누.

  3. 홍민선 2010/01/26 18:31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환한 웃음
    마음에 담아 너를 그려본다.
    높고 낮은 산을 넘어
    지구 의 별이 되어
    길을 밝혀주는 은주
     
    은주야 생일 축하해..^^
    내일이 네가 세상에 태어난 날
    오늘밤 마음에 케익을 준비하여
    촛불이 되고 싶구나.
    생일 축하한다..^^.
    2010 1 26

    시 엄마 시 아빠
     

  4. 2010/01/27 00:26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비밀댓글 입니다


 

 영하 날씨로 눈 내린 거리가 빙판으로 변한 7일, 종종걸음으로 Schuman 지하철역(메트로역)으로 향했습니다. 오후 5시가 갓 넘은 시각, 수줍은 많은 벨기에 브뤼셀의 태양은 어느새 귀갓길에 나섰습니다.
 
 브뤼셀의 지하철역은 제 방만큼이나 지저분합니다. 바닥이며, 벽이며, 에스컬레이터 손잡이며 검정 때가 덕지덕지 묻어 있어 어디다 손을 놓아야 할지 망설여집니다. 동전이 든 플라스틱 컵을 흔들며 “고맙습니다, 사모님”을 외치는 덩치 좋은 아저씨들도 있어서 늦은 시간에는 살짝 무섭습니다. 그래서 무조건 빨리 지하철로 빨려들어가는 게 상책입니다.
 
 퇴근시간이라 지하철에는 사람이 가득했습니다. 남은 자리가 없어 기차처럼 8명이 마주앉는 자리 중간에 섰습니다. 목적지 역을 놓치지 않으려고 창밖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데 허리 아래쪽에서 눈길이 느껴집니다. ‘이건 뭐지?’
 
 내려다보니 ‘천사들의 합창’에서 툭 튀어나온 것 같은 귀여운 여자 어린이가 신기한 듯 절 봅니다. 벨기에에는 동양인이 많지 않습니다. 브뤼셀 인구 110만 명 가운데 한인이 800명 정도라니 한국인을 지하철에서 만나는 일은 정말 드물지요. 엄마가 차도르를 쓴 걸 보니 이슬람계 어린이인가 봅니다.
 
 너무나 해맑은 웃음을 선사해 저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습니다. ‘브뤼셀에서 저렇게 환하게 날 반겨주던 사람이 있었던가.’ 제가 “Hello”라고 인사말을 건네자 그녀는 “Bonjour”라고 화답합니다. ‘언어의 장벽’ 탓에 대화를 이어가긴 어렵겠군요. 그래도 서로에 대한 호감을 표시하는 방법이 없을까요?  “나랑 악수할래요?”라고 물으며 손을 내밀었습니다. 제 손의 3분의 1도 되지 않는, 차갑지만 보드라운 손이 다가왔습니다. 순간 심장에서 뭔가 툭 떨어지는 느낌이 들더니 뱃속까지 번졌습니다.
 
 역을 몇 개 더 지날 때까지 ‘미소 놀이’는 계속됐습니다. 그러더니 그녀가 작은 엉덩이를 의자 옆 끝 쪽으로 옮기더니 빈자리를 손으로 툭툭 치며 불어를 합니다. 제가 언뜻 이해하지 못해 엄마를 쳐다보니 “함께 앉자고 하네요.”라고 통역해주더군요. 얼마나 다정한 배려인가요. 제가 웃으며 “고맙지만, 다음 역에 내린다.”라고 답했습니다. 영어를 알지 못하는 어린이는 그 자리가 좁다고 제가 불평하는 줄 알았나 봅니다. 아예 자리에서 일어나 엄마 무릎으로 향했습니다. 자리를 제게 양보한 것이지요.
 
 친절한 어린이에게 제가 줄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한국에서 가져온 작은 열쇠고리라도 하나 갖고 다녔으면 좋았을 텐데…. 대신 그녀의 사진을 아이폰에 담기로 했습니다. 그녀는 수줍은 듯, 그러나 즐겁게 모델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제가 속삭였지요. “너의 작은 친절을 오랫동안 기억할게.”


 
 벨기에 어린이의 작은 친절이 얼어붙고 웅크렸던 제 마음을 살포시 녹여줬습니다. 세상에 갚아야 할 빚이 또 하나 늘어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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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무앗딥 2010/01/08 16:52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잘 봤어요.늦었지만 새해 인사 드릴게요.고생이 많겠어요.아자.

  2. Johd 2010/01/08 17:41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잘봤습니다. 저도 웬지 그때의 감정을 느낄수 있는것 같아 , 따뜻해지네요. 새해복많이 받으세요.^^
    -Iphone 유저가 트위터 보다 들어왔습니다 ~ ㅎ

  3. 구름마을 2010/01/09 01:07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아고 귀여워라... 말이 필요 없네요.
    천사들의 합창... 학생시절에 재미있게 봤었죠.
    지금 딸딸이 아빠인데... 또딸이 아빠에 도전해 볼까요?ㅎㅎㅎ

  4. 홍민선 2010/01/12 11:04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유럽까지 네가 가고 보니 이웃처럼 느껴진다.
    다시 만날 때 활짝 웃는 모습을 그리며

  5. BlogIcon 서날쇠 2010/01/13 11:33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예전에 말씀하셨던 유럽 취재 중이시군요.
    일상 속에서의 작은 친절을 기록하는 것이 역시 베스트 블로거이십니다. ^^

    항상 명랑이 함께 하시기를...


    추신. 댓글까지 남겨주시는 시아버님 역시 베스트 블로거 시아버님답습니다. ^^

  6. BlogIcon 노란연필 2010/01/13 17:10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이런 저런 뉴스를 보다가 기자님 이름이 제 이름과 똑같아서 링크 타고 들어왔는데, 참 가슴 훈훈한 포스트가 올라와 있네요. ^^ 반갑고, 기분 좋습니다. (저도 3년 안에 유럽 가는게 꿈이에요. ㅎㅎ)

  7. 김성수 2010/01/15 01:21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정은주 기자님 브뤼셀에서도 즐겁고 유쾌하게 잘 지내고 계시니 반갑습니다. 앞으로 종종 들르겠습니다.

  8. BlogIcon 서날쇠 2010/01/15 17:46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지난 13일 머나먼 한국에서는 블로그 가자에 대한 시상식이 있었더랍니다.
    관련기사 제목을 보고는 '법조기자 블로그'가 당연히 포함되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아~ 하지만 없더군요. 대단히 안타까웠습니다.
    아마 멀리 계신 탓이겠지요. ^^

    비록 선정되지는 않았지만,
    제가 생각하는 법조기자 블로그는 대한민국 최고의 기자 블로그입니다.

    아자! 아자!


 

 ‘하필 벨기에 브뤼셀로 가는 거야?’ 출장을 오기 전에 많이 들었던 질문입니다. 저는 왜 브뤼셀에 왔을까요?
 
 지난해 서울신문은 순회특파원 1기를 공모했습니다. 세계 어디로든 취재를 떠나 기사를 쓰는 것입니다. 주제도, 장소도, 기간(2개월 이내)도 자유입니다. 예산만 정해져 있습니다. 

   ● 유럽연합의 수도, 브뤼셀

 아프리카 일주에 도전하고 싶었지만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아 유럽을 선택했습니다. 프랑스, 영국 등 다른 언론사 특파원이 파견되지 않은 곳, 벨기에 브뤼셀(연합뉴스 기자만 1명 있습니다)로 말입니다. 브뤼셀에는 유럽연합(EU) 본부가 있는 곳입니다. 유럽 집행위원회와 유럽 이사회, 유럽연합 의회 등이 자리한 ‘유럽연합의 수도’입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등 국제기구와 비정부기구(NGO), 싱크탱크도 넘쳐나고 그 덕분에 기자와 로비스트만 수천 명이 상주합니다. 유럽연합은 경제적으로도 세계 최대의 단일시장이라 다국적기업 2200여개가 브뤼셀에 사무소를 두고 있습니다. 

   우리는 벨기에를 배낭여행족이 프랑스에서 독일을 넘어갈 때 30분간 머무는 곳 정도라만 인식하고 있습니다. 2005년 여름까지 언론사 특파원이 한 명도 없었고,  대사 한 명이 벨기에, 유럽연합, 룩셈부르크, 북대서양조약기구 대사를 겸임하고 있습니다.  홀대가 지나치다 싶습니다.   특히 벨기에는 우리랑 닮아서 배울 점이 많은 데도 말입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강대국 사이에 낀 모양새가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지혜롭게 강대국을 조율하며 제몫을 챙겨나가고 있는  것 또한 눈여겨 봐야 합니다. 유럽연합의 초대 대통령도 반 롬푀이 벨기에 총리가 당선됐잖아요. ‘공부 잘하는 친구’라는 얘기입니다.   

   ● 강대국에 낀 약소국, 우리랑 닮았다

 유럽에 대한 제 관심은 1999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할 때 생겼습니다. 프랑스 출신이 많이 사는 지역이라 유럽에 대한 향수가 짙게 묻어났습니다.  미국과 다르다고 강조할 때마다 캐나다는 자국의 사회보장제도를 ‘유럽형’이라고도 설명했습니다. 의료비나 교육비를 정부가 책임지는 것, 실업자나 고령자에게 연금을 지급하는 것, BBC와 유사한 CBC라는 국영방송사를 지원하는 것 등 모두 유럽형 정책이라는 것입니다.
 
 “‘미국형’은 우리나라에서도 자주 들어봤는데 ‘유럽형’은 뭐지?”
   
 그 궁금증은 10년이 지난 2009년 5월 되살아났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전에 읽었던 마지막 책, ‘유러피언 드림’ 때문입니다. 미국 사회 사상가인 제러미 리프킨이 쓴 이 책은 ‘유럽형’을 ‘미국형’과 비교하며 아메리카 드림의 몰락과 세계의 미래를 전망하고 있습니다. 리프킨의 주장대로 공존시대의 문을 열 열쇠를 유럽이 지녔는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유럽 집행위원회 앞에 서있는 로베르 슈만 기념비. 그는 1950년 전쟁없는 유럽을 꿈꾸며 유럽통합을 처음 제안했다.

    ● ‘유러피언 드림’ 따라가는 여정


 ‘유러피언 드림’을 따라가는 저의 첫 발걸음이 바로 벨기에 브뤼셀 EU본부 취재입니다. 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50년 전쟁 없는 유럽을 꿈꾸며 프랑스 로베르 슈만과 독일의 콘라드 아데나워가 제안한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가 관세철폐, 단일통화까지 이루면서 1991년 ‘유럽연합(EU)’으로 발전했습니다. EU본부가 있는 곳의 지하철역 이름이 그래서, 슈만(Schuman)입니다. 그를 기르는 기념비가 유럽 집행위원회 입구에 놓여 있습니다.

   저는 유럽연합 집행위와 이사회 등의 출입기자로 등록합니다. 한국언론재단(현 한국언론진흥재단)과 유럽저널리스트센터(EJC)가 주최하는 EJC 한국 연구원으로도 선정됐거든요. 유럽연합이 언어·문화·경제·정치 상황이 서로 다른 27개국을 융합·발전하려고 어떤 정책을 펼치고 있는지 현장에서 취재해 보도할 예정입니다.  ▲ 일자리창출 ▲ 지역균형발전 ▲ 출산장려 ▲ 교육지원 등 다양한 정책을 살펴보고 각 나라도 방문할 예정입니다. 물론 제 계획대로 일이 척척 진행될지는 미지수지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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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구름마을 2010/01/08 11:05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좋은 기회를 얻으셨고,
    현명하게 활용하고 계시는군요.

    (아프리카는 후일 대박나신 담에 프리 선언하고 가세요...)

    다음달이 되면 저도 그동안 읽기만 하고 적지 못했던 북로그를 차근차근 메꾸어 나가려 합니다.
    그냥 소개차 띄운건데 구독목록에 올려놓아 주셔서 부끄럽습니다.

    본격적인 취재기를 기대하겠습니다^^

  2. 오아시스 2010/01/12 10:57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하얀 눈과 친구하면서
    아름다운 기자가 눈을 밟는 발자국 따라
    유럽의 사회가 꽃 피었으면 해..^^

  3. 2010/01/15 01:38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비밀댓글 입니다

  4. 2010/01/27 00:23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비밀댓글 입니다

  5. BlogIcon 공생인간 2010/02/03 23:48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정말 간만에 블로그 왔네요. 그새 유럽가셨네요. 저도 2003년(벌써 7년 전이군요) 유럽학(European Studies) 석사 과정을 위해 독일 브레멘에 2년 가까이 살았던 적이 있는데, 그때 반에서 브뤼셀로 세미나를 갔었죠. 유럽연합 본부도 갔던 기억이 나고 브뤼셀에서 영어로 물어봐도 불어로 답해주던 '콧대높은' 벨기에 사람들 때문에 짜증난 적도 있었지만 아련한 기억들이 떠오르네요.

    혹시 브레멘에 가실 일이 있으면 이메일 주세요(ktreporter@hanmail.net). 거기 살고 있는 한국분들과도 여전히 연락되는 분들도 있고 유럽학 관련해서 인터뷰할 독일 교수들도 그곳에 있으니까요.

    • BlogIcon 꿈뱀파이어 2010/02/05 07:15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정말 무작정 가고 싶은데요.^^ 요즘은 맘 통하는 사람과 맥주 한잔 마시며 시시콜콜한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요.


 

 블로그와 트위터로 연일 자랑하던 그 벨기에 출장을 마침내 단행했습니다. 2일 오전 8시  JAL(일본항공) 비행기에 몸을 싣고 24시간 만에 벨기에 브뤼셀 아파트에 무사히 입성했습니다. 도착이 무사했다는 것이지, 그 과정이 무사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12년 전 캐나다 유학 때보다 한 발짝도 나아지지 않은 저를 발견했으니까요.
 
 ● 공항에서 짐 풀기

 일본항공을 선택한 것은 가격이 저렴하고 일본을 경유할 때 최대 14일간 머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도 취재할 계획이 있는 터라 제게는 더 없이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그러나 말썽은 엉뚱한 곳에서 터졌습니다. 바로 짐 무게였지요. 유럽도 미국이나 캐나다처럼 30kg짜리 가방 2개를 화물로 부칠 수 있는 걸로 저는 알았거든요. 항공권에 분명히 화물은 20kg이라고 적혀 있는데도 말입니다.
 
 공항에서 2개의 가방 무게를 달아보니 40kg. 20kg를 초과하는 짐은 kg당 3만 8000원씩 지급해야 한다고 직원이 말하더군요. 항공료에 맞먹는 화물운송료를 내야 할 상황입니다. 방법은 가방 하나를 버리는 것, 그것도 15분 내에 말입니다.
 
 가방 두 개를 완전히 열어놓고 '대공사'에 돌입했습니다. 햇반 등 '전투식량'이 첫 번째 탈락자였습니다. 한국인에게 선물로 줄 생각이었던 팩 소주가 다음 차례였고요. 라면을 두고 살짝 망설이다 남기기로 했습니다. 정말 라면까지 없으면 낯선 땅에서 생존할 수 없을 것 같아서요. 옷을 빼고 자잘한 소품까지 정리하고…

 ● 팩 소주는 버리고 라면은 지키고

   마지막으로 전기장판과 취재자료인 책 사이에서 괴로워해야 했습니다. 숙소가 너무나 춥다는 전임자의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았습니다. 한여름에도 에어컨 바람이 싫어서 긴소매를 입고 다니는 제게 전기장판은 생존도구였습니다. 그렇다고 유럽에서 구할 수 없는 한국 책, 취재자료를 포기할 수는 없었지요.  시간은 흐르는데 고민은 깊어지고…. 결국 책을 찢기로 했습니다. 취재에 필요한 부분만 찢어서 가져가는 것이지요. 고등학교 때까지 자를 사용하지 않고는 책에 줄도 긋지 못하던 제가 그런 결정을 내리다니…. 다급하면 초인적인 힘이 생기나 봅니다.
 
 그렇게 짐을 하나로 줄였습니다. 옆에 버리고 갈 짐이 산더미처럼 쌓였더군요. 항공사 직원이 안쓰러웠던지 작은 가방을 하나 더 만들어 보라고 충고했습니다. 화물을 좀 더 넣어주겠다고요. 버렸던 책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전투식량도 하나 둘 더 넣었습니다. 그리고 마감. 제가 그날 일본항공편의 마지막 체크인 손님이 됐습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짐을 풀고 싸다 보니 가장 중요한 ‘짐’을 챙기지 못했습니다. 17년 전에 만나 저랑 6년간 한집에 사는 그 사람이요. 다정한 이별의 말 한마디를 할 시간조차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네가 하는 일이 그렇지.”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섰습니다. 좌충우돌 욕심쟁이 파트너를 만나 그가 참, 고생이 많습니다.
 
 ● 탑승구를 향해 달려라
 
 4일 우리나라에 눈폭탄이 퍼부었다고 하는데 그 조짐은 2일부터 보였습니다. 그날 오전 8시 이륙할 일본항공은 50분가량 연착했습니다. 비행기 날개 등에 쌓인 눈을 털어내야 해서요. 그러면서 또다시 문제가 생겼습니다. 10시 20분에 일본 나리타 공항에 도착해 11시30분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행 비행기를 타기로 예정됐는데 환승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으니까요.
 
 아니나다를까 나리타 공항에 도착했더니 일본 항공사 직원이 옷에 스티커를 붙여주며 빨리 보안검색대를 통과해 암스테르담행 비행기의 탑승구로 달려가라고 ‘지시’했습니다. 인천공항에서 짐을 싸며 쌓인 피로도 풀리지 않았는데 나리타 공항에서 달리기라니….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엄마의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비행기에 탔고 제 짐도 무사히 옮겨졌습니다. 마지막에 실은 짐이라 손쉽게 빼낼 수 있었다고 하더군요. 나쁜 시작이 꼭 나쁜 결과를 낳는 것만은 아닌가 봅니다. 다리 뻗기도 어려운 이코노믹 좌석에서 12시간을 뒤척였습니다.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 영화를 몇 편 봤지요. 특히 ‘UP’이 재밌었습니다. 탐험의 꿈을 실현하는 할아버지의 험난한 삶이 참으로 아름답더군요. 100일간 블로그에 기록할 유럽 탐방기 제목을 ‘My Adventure Blog’로 정했습니다.

● 제목은 ‘My Adventure Blog’ 탐방기
 
 2일 오후 4시(현지시각)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히폴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우리 시각으로는 자정이 훌쩍 넘었지요. 아침부터 설친 탓에 졸음이 쏟아졌습니다. 그러나 자면 안 됩니다. 오후 6시30분 기차를 타고 벨기에 브뤼셀로 이동해야 하니까요.  오후 9시(벨기에 시각) 마침내 숙소(아파트)에 도착했습니다. 2일 오전 5시(한국시각) 집에서 일어난 지 꼭 24시간 만입니다.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힘이 없습니다. 새로운 주인에게 텃새를 부리는지 히터는 차갑기만 했습니다. 방안 온도가 10도를 넘지 않더군요. 그래도 침대만은 따뜻했습니다. 책과 바꾼 전기장판 덕분이지요.

덧붙임. 장기 취재여행을 갔다오는 사이 전기장판이 고장났습니다. 조절기에 불을 켜지는데 장판은 뜨겁지 않습니다. 방 히터가 이제 나와서 죽을 것 같지만 않지만, 춥습니다. 


 

벨기에 브뤼셀 숙소(아파트) 부엌에서 즐기는 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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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heelbug 2010/01/05 17:20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좌충우돌 유럽탐방기가 되겠군요. 기대하겠습니다.
    책과 바꾼 전기장판이야 극복할 수 있겠지만 정작 17년이나 사귀었고 한집에 산 지 6년이나 된 그 양반을 버린 것은 극복하기 힘들겠습니다. 만약 제 안해가 그런 만행을 저지른다면 전 용서하지 않았을겁니다.
    "나 데리고 가던지 아니면 도장 콱 찍고 가!"

  2. 2010/01/06 03:15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비밀댓글 입니다

  3. 구름마을 2010/01/06 20:31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뭐 그렇게 출장 다니고 여행 다니고 하다보면 느는거 아니겠습니까...

    6년이나 같이 사신 분은 기자님 스타일 훤히 알텐데, 그런거 체크 안해주고 뭐하셨답니까...
    이렇게 편들어 주는 아자씨도 있다고 우기시면... 진짜로 도장 이야기 나오려나요.

    그나저나 실내온도가 10도 내외면 어떻게 버티나요... 손이 곱을 텐데.

  4. 걸리버 2010/01/08 01:50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경험상 책을 버리는게 가장 답이더군요..^^;. 책은 나중에 부쳐달라고 하셔야...
    좋은 경험으로 좋은 글 쓰시기 바랍니다.

  5. 오아시스 2010/01/12 10:48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안녕 유럽에까지 취재하러가서 정말축하해
    무엇보다도 건강하고 좋은기사가 도배하였으면 해..^^

  6. 김성수 2010/01/15 01:31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웬지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가 무궁부진하게 전개될 거 같은 느낌이네요 블로그 제목부터가 마이 어드벤처 블로그라...
    그 모험담이 우리의 꿈과 현실을 조금은 더 멋지게 바꾸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7. BlogIcon 베르나무 2010/01/17 10:08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정말 흥미진진 기대가 큽니다. 무엇보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