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형사재판소(ICC)의 한국인 김상우(36) 수사관과 이성훈(36) 정보관은 닮았지만 다르다. 이 수사관은 경찰청 파견 공무원으로, 이 정보관은 홀로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첫발을 내디뎠다. 공통점은 ICC ‘검찰부’ 유일한 한국 직원으로 동갑내기라는 점이다. 검찰부는 재판소 소속이지만 수사검사의 지휘를 받으며 독립적으로 활동한다. 재판소가 특정 사건의 수사 개시를 허락하면 검찰부는 집단학살 등 반인륜 범죄의 수사하고 기소, 재판을 이끈다.

 2005년 4월 ICC는 한국 수사관을 채용을 경찰청에 타진했다. 경찰 6명이 지원했고 김 수사관이 ICC의 서류, 필기, 면접 등을 통과했다. 1996년 경찰대 법학과를 차석으로 졸업한 그는, 영국 런던정경대학(LSE)에서 국제형법을 공부, 영국 변호사 자격증을 갖춘 상태였다.  빛과 그림자는 분명하다. 굵직한 국제 범죄를 수사한다는 명예를 얻지만, 아프리카 내전 현장을 누비는 위험이 뒤따랐다. 한 해에 140일을 집 밖에서 보내지만, 아내도 그가 어디로 출장을 가서 무엇을 하는지 모른다. 그리고 몰라야 한다.


● 아내도 어디로 출장가는지 모른다

 “믿을만한 정보원, 증인을 확보하고 신뢰를 구축하려면 비밀유지가 생명”이라고 김 수사관은 말했다. 특히 “한국에서 배운 수사기법을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다.”고 했다. 96년부터 서울 강남서 수사과에서 일한 그는, 피해자의 진술을 구체화하고 정보원을 통해 현장을 파악하는 것을 몸으로 익혔다. “전문화, 다양화된 국제범죄와 어떻게 싸울 것인지 한국으로 돌아가 연구하고 싶다.”고 했다.

 이성훈씨는 국제기구와 인연을 없을 것 같은, 컴퓨터 전문가다. “국제기구도 일반 기업처럼 재무, 인사, 정보기술 전문가 필요하다. 특히 수사·재판기록을 인터넷으로 제공하는 국제재판소에서는 더욱 그렇다.”고 그는 설명했다. 한양대 교육공학과를 졸업하고 97년 IBM에 취직했던 그는 5년 만에 캐나다 이민을 선택했다. ‘외국에서 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실현한 것이다.


● 뱃살은 늘고 은행잔고는 줄고

 그러나 현실은 만만하지 않았다. 2001년 취업원서를 넣는 곳마다 떨어졌다. 뱃살은 늘어가고 은행잔고는 줄어갔다. 절박한 심정으로 몬트리올 맥길대학 정보공학과에 석사과정을 밟았다. 기다렸다는 듯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손을 내밀었다. “경력은 괜찮은데 영미권에서 공부한 경력이 없어서 고용을 꺼렸던 국제기구가 대학원을 마치니 흔쾌히 자리를 내줬다.”고 했다. 2008년 ICC 정보관으로 옮긴 그는 “다른 국적 사람과 다양한 경험을 고유할 수 있어 재밌고, 수평적 관계로 얽혀 스트레스도 덜하다.”고 했다.

 대학 때까지 국외에서 영어를 공부한 적이 없는 두 사람은 “영어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김 수사관은 “논리적인 말하기, 글쓰기가 되면 문법이 좀 틀리더라도 인터뷰, 수사보고서 작성에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이 정보관은 “‘내가 너희 말을 하는 게 어디냐.’라는 당당한 자세로 대한다.”면서 “영어 발음, 문법에 신경 쓰기보다는 하고 싶은 말을, 정확히 표현하는 것에 집중하라.”고 충고했다.

 

● 열 살짜리 소년 부모 총살

   “콩고민주공화국에서는 아홉 살, 열 살짜리 소년을 납치해 2년간 최고의 사격수를 만든다. 그리고는 고향으로 데려가 부모를 직접 총살하고 인육을 먹으라고 한다. 그래야, 소년군이 돌아갈 곳이 없어서 반군을 탈출하지 않기 때문이다. ”
 송상현 국제형사재판소(ICC) 소장은 아프리카 현장을 누비며 반인륜 범죄자를 국제법정에 세워야 한다는 확신을 얻었다. “주권이나 국경을 초월해 인간이 지켜야 할 보편적 가치가 있다는 것, 그걸 국제사회가 보호해야 하고 ICC가 그 중심에 있다.”고 그는 말했다.


 ICC는 집단살인죄, 전쟁범죄, 침략범죄 등 국제인도법 위반 범죄를 저지른 개인을 처벌할 수 있는 상설 국제재판소다. 전쟁범죄를 범하고도 처벌받지 않는 전례가 많았다는 국제사회의 지적에 따라 2002년 7월 문을 열었다. 국가간 사건을 다루는 국제사법재판소(ICJ)와 달리 회원국 110개국이 참가하는 형사재판소는 개인을 처벌한다. 다만, 관할권은 회원국에서 범죄가 발생했거나 범죄인의 국적이 회원국일 때, 그리고 회원국이 범죄자를 형사소추할 의지가 없을 때만 행사할 수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제소하면 회원국이 아니어도 가능하다. 형량은 최고 30년 유기징역이나 무기징역을 선고할 수 있다. 

● 아프리카만 단죄한다?

 그러나 미국, 중국, 중동 국가 등이 가입하지 않은 것을 한계로 지적한다. 특히 현재 다루는 사건이 콩고민주공화국, 우간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수단 다르푸르 내전 등 아프리카 대륙에 집중됐고, 지난해 오마르 알 바시르 수단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되면서 ‘힘없는 아프리카만 사냥감으로 삼는다.’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송상현 소장은 “콩고·우간다·중앙아프리카는 국가가 수사를 요청했고 수단은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른 것”이라면서 “그루지야, 콜롬비아, 가자지구 등에서 발생한 반인륜 범죄에 대해서도 살펴보고 있다.”고 반박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등 고발사건 9000여건을 감찰부는 검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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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엔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는 지난해, 정부조달 유엔 모델법을 만들면서 우리나라 조달청의 인터넷 기반 ‘다수공급자물품계약제(MAS)’ 규정을 적극적으로 인용했다. MAS제도란 조달청이 단가계약을 체결한 여러 업체를 인터넷 쇼핑몰에 올리면 각 정부기관이 입찰 절차 없이 물품을 사들이는 제도다. ‘인터넷 강국’답게 인터넷을 법률과 적절히 융합했다는 긍정적 평가가 쏟아졌다. 주오스트리아 대사관 사법협력관 정창호 부장판사는 “지적재산권 담보 특례법 등 제정 중인 우리 법률을 소개했더니 담보등록제도의 국제표준 개발작업을 우리나라가 주도해달라는 제안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한국에 대한 국제법률기구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 이어 송상현 국제형사재판소(ICC) 소장, 권오곤 옛 유고슬라비아국제형사재판소(ICTY) 부소장, 오수근 UNCITRAL 의장이 잇따라 선출되면서 한국법에 대한 인지도가 넓어졌기 때문이다. 젊은 법률가가 다양한 국제법률기구에 인턴 및 실무 전문가로 참여하면서 한국인과 국제기구간의 친밀도도 두터워졌다. 1893년 설립된 헤이그국제사법회의(HCCH)는 올해 처음 한국인 인턴을 고용한 데 이어 한국 판사도 파견해달라고 대법원에 요청했다.

    한국인의 국제법률기구 진출이, 한국법의 국제법률시장 수출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젊은 법률가의 국제기구 진출을 후원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유럽 소재 국제재판소 등 국제법률기구를 찾아가 한국인, 한국법에 대한 그들의 관심을 시리즈로 싣는다.  1회는 프롤로그로 한발 앞서 국제법률기구에 진출한 젊은 한국 법률가이 말하는 ‘그들만의 비법’을 소개한다.


 
 ● 국제법 NO 전문성 YES


 밥할 줄 안다고 요리사라고 부를 수는 없다. 국제법은 기본이다. 밥은 물론 나만의 음식을 식탁에 내놓은 인재를 국제법률기구는 찾는다. 올해 UNCITRAL에 정식 채용된 이아름(27·여)씨가 그런 경우다.


 외대 법학과를 졸업한 이씨는 석사과정을 밟으며 ICTY와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인턴으로,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에서 계약직 직원으로 일했다. 2008~2009년에는 한국무역협회의 후원을 받아 미국 카네기 멜론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을 배웠다. UNCITRAL는 전자상거래 모델법을 만들면서 법률과 전자상거래를 접목할 전문가를 물색했다. 이씨의 이색 경력이 딱 들어맞았다. 그는 “국제기구는 바로 현장에 보낼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면서 “하나하나 가르쳐주는 곳이 없다.”고 말했다.
 
 ● 자비 NO 지원 YES


 유엔은 인턴 직원에게 보수를 주지 않은 게 원칙이다. 그렇다고 길이 없지는 않다. 이아름씨는 유엔산하기구인 ICTY에 일하면서도 우리나라 여성부 국제여성전문 인턴으로 뽑혀 생활비를 보조받았다. ICC 인턴인 전진(26·여)씨는 월 1000유로(약 160만원)씩 생활보조금을 받는다. 그는 “경제적 여건이 어렵다는 사정을 국제기구에 설명하면 지원을 받을 방법이 알려준다.”고 설명했다.

   헤이그국제사법회의(HCCH) 인턴인 이선(30·여)씨는 지난해 헤이그 아카데미를 밟으며 전액 장학금에 생활비 보조까지 받았다. 원광대 법학전문대학원생인 그는 “불안한 마음에 지원서를 꼼꼼하게 작성한 덕분”이라면서 “일해보니 한국 법률에 대한 관심이 상상 이상”이라고 말했다.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생인 전우정(34)씨도 사법통일국제연구소(UNIDROIT)에서 한국인으로 처음, 생활지원(숙소 및 일 25유로)을 받고 항공기 등 이동장비담보권 협약을 연구하고 있다.
 
   ● 인맥 NO 인터넷 YES


 국제기구는 공석이 생길 때마다 홈페이지를 채용공고를 낸다. 인턴지원이라도 절차를 차곡차곡 거쳐 실력을 입증받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관심있는 기구가 있으면 ‘즐겨찾기’에 등록해놓고 들락거리는 게 좋다.


 검사 출신의 이윤제(41) 아주대 전 부교수는 국제형사법 전문가를 선발한다는 ICTY의 채용공고를 보고 지원, 채용됐다. “검사 경력, 국제형사법 강의 경험이 유리하게 작용했다.”면서 “기본 절차를 충실히 밟는 것이 최고의 비법”이라고  설명했다. 전진씨는 “국제형사재판소의 원칙은 인맥을 내세우면 우선 탈락”이라면서 “인터넷 공고에 맞춰 충실하게 자료를 준비하는 게 비법”라고 말했다.

   ● 영어시험 NO 실력 YES


 영어성적이 몇 점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의견을 영어로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이선씨는 “시험성적은 좋지만 일할 때 의사소통이 힘들면 곤란하다.”고 설명했다. 이아름씨는 “면접 때 1시간 얘기하다 보면 영어는 물론 배경지식이 다 드러난다.”고 했다. 이윤제 교수는 “영어실력으로만 보면 미국, 영국을 제치고 한국인을 뽑을 이유가 없다. 경력과 법률지식을 충실히 갖추면 수단(영어)을 보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영어 YES 불어 YES


 오히려 불어가 중요하다. 국제법률기구는 불어를 공식언어로 오래 사용해서 문서가 대부분 불어로 남아있다. 국제재판소도 불어를 공식언어로 채택하고 자료를 축적한다. 이런 불어 자료를 읽을 수 있으면 당연히 유리하다. 영어에 능숙한 권오곤 ICTY 부소장이 최근 후배들과 ‘불어 공부 모임’을 시작했다.    


 외교통사부의 JPO(초급전문가), 유엔의 국가별경쟁시험(NCRE)을 모두 통과해 UNCITRAL 실문전문가로 일하는 이재성(35) 미국 변호사는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은 금물”이라면서 “국제기구가 원하는, 그렇지만 쉽게 찾을 수 없는 독특한 전문성, 경력을 갖춰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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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racked from 자작나무숲의겨울오리온 2010/03/21 23:59 삭제

    Subject: 국제기구로 가는 지름길, JPO

    TV에서 본 아프리카에 살고 있는 내 나이 또래 꼬마의 볼록나온 배와 동그란 눈망울이 밤새 잊혀지지 않고 맴돌던 어린 시절이 있는 써니라면, 국제 현안에 대한 관심으로 똘똘 뭉친 써니라면, "내가 외국어라면 좀 하지!"하는 명석한 뇌를 가진 써니라면, 어려운 사람을 보면 지나치지 못하는 따듯한 마음을 가진 써니라면 당신의 능력을 더 큰 세상을 위해 보여주세요. ● 국제기구가 뭐에요? '국제기구'하면 무슨 생각이 떠오르시나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1. 구름마을 2010/02/09 23:58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잘 읽었습니다. 제가 다른데 신경쓰느라 조금 늦었죠.

    외국어 능력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능력(실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언급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평범하고도 당연한 진리인데, 최근 한국에서는 영어능력이 "목적"으로 변질된 것이 아닌가 해서요.

    • BlogIcon 꿈뱀파이어 2010/02/11 22:25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게다가 영어를 제2외국어로 쓰는 유럽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영어가 전반적으로 쉬워졌습니다. OECD 보고서나 유럽 정책 발표문을 읽어보면 깜짝 놀랄만큼 모르는 단어가 없습니다. 이 이야기는 한번 쓰려고 하는데.. ^^

  2. 2010/03/02 01:22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비밀댓글 입니다